[지구촌 리포트]
■ 유럽 그린딜과 ‘농장에서 식탁까지’ 전략
유럽그린딜(European Green Deal, 이하 그린딜)은 2019년 12월, 폰 데어 라이엔 1기 집행위가 출범 직후 발표한 이니셔티브다. 그린딜은 유럽이 2050년까지 탄소 중립(climate-neutral), 즉 온실가스의 순 배출량이 0이 되는 상태에 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법적으로는 기후법(Regulation (EU) 2021/1119)을 채택해 회원국의 온실가스 감축을 의무화했다.
그린딜은 에너지, 환경, 수송, 농업 등 광범위한 부문에서 전략을 제시하며, 이 중 농업 부문에서는 Farm to Fork (농장에서 식탁까지) 전략을 통해 공정하고 친환경적인 식량 공급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한다. 집행위에 따르면 식품 산업은 현재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1/3을 차지하며, 천연 자원 고갈, 생명 다양성 소실 등 환경 문제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분야다.
먼저 ▲지속가능한 식품 생산을 위해서는 2030년까지 화학 농약 사용량 50% 감소, 유해한 농약 사용량 50% 감소, 비료 사용량 최소 20% 감소, 축산·수산용 항미생물제제 판매량 50% 감소, 농지 최소 25% 유기농법 사용 등을 구체적인 목표로 설정했다. 온실가스를 감축한 생산자들에게는 공동농업정책(CAP) 보조금 등으로 보상하는 방안도 제시되었다. ▲식량 안보 측면에서는 코비드 팬데믹과 같은 정치·경제·환경·보건 분야의 위기가 식량 위기로 이어지지 않도록 식품 공급망 전반을 점검 및 관리하겠다고 발표했다.
▲지속가능한 식품 가공·유통·서비스를 위해서는 포장재 등 식품접촉물질(FCM) 규정을 대대적으로 개편하고, 재사용·재활용 가능한 물질 사용을 장려해 폐기물을 저감할 계획이다. ▲지속가능한 식품 소비 및 식습관을 장려하기 위해서는 소비자에게 식품에 대해 보다 정확하고 자세한 정보를 알릴 수 있도록 라벨링 규정을 강화하는 방안이 포함된다.
또한 ▲음식물 쓰레기 저감을 위해서는 사용 기한, 유통 기한 등의 표기 오용을 바로잡아 버려지는 식품을 줄이고, 식품 생산 단계에서 발생하는 손실을 감독할 예정이다. 집행위는 2030년까지 소비자 단계에서 1인당 음식물 쓰레기 배출량을 절반 수준으로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식품 사기에는 무관용 원칙을 적용하고 관련 당국의 권한을 강화할 예정이다.
■ 산림전용방지규정 (EUDR)
산림전용방지규정(Regulation on Deforestation-free Products, 이하 EUDR)은 Farm to Fork 전략의 대표적인 정책이자, 현재 식품 산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규정이다. 이는 산림 파괴와 연관이 깊은 7개 품목(소·코코아·커피·팜유·고무·대두·목재)과 그 파생 제품에 적용되어, 기업이 해당 상품을 EU 시장에서 판매하기 위해서는 산림 전용(轉用, deforestation) 및 황폐화와 무관함을 입증하는 방대한 문서를 제출하도록 의무화한다. 규정을 위반할 경우, 해당 기업이 EU 시장에서 연간 벌어들인 금액의 4% 이상에 달하는 벌금이 부과될 수 있으며, EU 내 거래 금지 조치가 내려질 수도 있다. EUDR은 당초 2024년 12월 30일부터 시행될 예정이었으나 한 차례 연기되었고, 현재는 대기업·중견기업은 2026년 12월 30일, 영세·중소기업은 2027년 6월 30일로 시행일을 미루는 개정안이 최종 승인을 앞두고 있다.
각 국가에서 생산된 EUDR 적용 제품이 EU로 수입될 때, 부여된 위험 등급에 따라 당국의 연간 점검 비율이 저위험국은 1%, 표준위험국은 3%, 고위험국은 9%로 달라진다. 한국과 같은 저위험국에서 규제 품목을 수입하는 경우에는 실사 의무가 간소화된다. 고위험국으로는 러시아·미얀마·벨라루스·북한이 있으며, 집행위는 2026년 중 유엔식량농업기구(FAO)의 최신 세계산림자원평가(FRA)에 근거해 위험 등급을 재평가할 예정이다.
■ 포장 및 포장 폐기물 규정 (PPWR)
포장 및 포장 폐기물 규정(Packaging and Packaging Waste, 이하 PPWR)도 그린딜의 일환으로, 모든 산업용·가정용 포장 및 포장 폐기물의 제조·판매·폐기 단계를 관리하며 식품 포장재 역시 이 규정을 적용받는다. PPWR은 기존에 법적 구속력이 한 단계 낮은 지침(Directive) 형태로 존재하던 제도를 강화한 것으로, 2026년 8월 12일부터 적용될 예정이다. 식품 접촉 물질의 과불화화합물(PFAS) 사용 기준이 엄격해지고, 포장 시 빈 공간의 비율이 최대 50%로 제한될 예정이다. 신선 식품, 음식, 음료 포장 용도의 일회용 플라스틱은 사용이 불가하고, 매장에서 플라스틱으로 포장된 소용량 소스를 제공하는 것이 금지된다. 소비자가 개인이 준비한 포장 용기에 음식을 가져갈 경우, 판매자가 추가 금액을 청구하는 것도 법적으로 금지된다.
■ 지속가능성 보고 및 실사 지침 (CSRD, CSDDD)
EU는 2021년 기업 지속가능성 보고 지침(Corporate Sustainability Reporting Directive, 이하 CSRD)을 채택해, 2024 회계 연도부터 기업이 지속가능성과 관련한 수치와 성과를 공시하도록 의무화했다. 이는 기존의 비재무정보 보고 지침(Non-financial Reporting Directive, 이하 NFRD)이 그린딜의 일환으로 확대·강화된 제도다. NFRD는 EU 내 대형 상장사, 은행, 보험사만이 적용 대상이었으나, CSRD는 적용 대상을 점차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또한 기존에 기업이 자율적으로 공시 기준을 선택할 수 있었던 것과 달리, CSRD는 2023년 채택된 유럽 지속가능성 보고 기준 (European Sustainability Reporting Standards, 이하 ESRS)을 따르도록 정하고 있다. NFRD와 동일하게, CSRD는 규정(Regulation)이 아닌 지침(Directive)이므로 구체적인 제재 내용은 각국의 국내법이 정한다.
ESRS에 따르면, 공시 의무를 가지는 기업은 ▲일반 공시 사항(지속가능성 관련 주요 정책, 조치, 목표, 성과 등) 외에도, ▲환경(기후 변화, 오염, 물·해양 자원, 생물 다양성·생태계, 자원 사용·순환 경제) ▲사회(자사 직원, 유관 근로자, 지역 사회, 소비자·최종 사용자) ▲거버넌스 각 분야에서 성과를 공시해야 한다. 또한 기업 지속가능성 실사 지침(Corporate Sustainability Due Dilligence Directive, 이하 CSDDD)에 근거해 공시 내용에 대한 실사 책임을 가진다.
그러나 지난 12월 9일 집행위는 CSRD, CSDDD를 간소화하겠다고 발표했다. 기준을 상향해 제도 적용을 받는 기업의 범위를 좁혔으며, 공시 의무와 실사 의무도 대폭 완화했다. 미이행 시 벌금은 글로벌 매출의 3%로 상한을 두었다. 이는 주요 교역국 정부와 기업의 압박 결과로 분석된다.
▶시사점
EU는 일찍이 지속가능성에 주목해 적극적인 입법과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식품 산업에서도 공급망 전반, 즉 원료의 생산·가공부터 포장, 도소매 유통, 수출입, 소비자 식습관까지 모든 단계에서 지속가능성을 위한 전방위적 관리·감독을 강화하는 추세다. 이러한 규제는 단순히 EU 회원국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교역 상대국에도 영향을 미치며, 산업계의 강한 반발로 연기되거나 간소화되기도 하지만, EU의 탄소 중립 정책은 지속적으로 확장·강화될 전망이다. 따라서 유럽 수출을 준비하는 식품업체들은 관련 규정을 면밀히 검토하고, 공급망 투명성 확보, 친환경 포장재 사용, 지속가능성 관련 데이터 관리 등을 통해 EU 시장에서 신뢰를 확보하고 ESG 경쟁력 강화를 기회로 삼는 전략이 필요하다.
▶출처
European Commission
문의 : 파리지사 나예영(itsme@at.or.kr)
※ 이 기사는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서 제공한 보도자료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